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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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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74)
2017년 07월 25일 19시 29분  조회:1716  추천:7  작성자: 김장혁



           김장혁 작

                 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
                                     
                                        제5권



                             

 

 

제22장 전우와 원수 그리고 형제

1. 첫 전투

먹장구름이 덮쳐 오더니 번개가 뱀의 혀처럼 구름층을 꿰뚫고 절벽에 내리 뻗쳐 휘감아 내동댕이쳤다. 화광이 번쩍 하며 절벽이 무너지는 상 싶었다.

우르릉 꽝꽝!

대줄기 같은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었다. 하늘땅을 들었다 놓는 우레 소리와 포성이 38선을 삼켜버렸다. 산과 들에는 포성이 울리고 화광이 충천했으며 전운이 침침하게 휘몰아쳤다.

성칠은 부대를 따라 함경도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는 아침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설거지를 하는 진달래를 불렀다.

진달래는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구들에 올라왔다.

성칠은 경주와 경수의 머리를 매만지며 진달래를 정색해 마주 바라보았다.

“여보, 당신은 오빠와 애들을 데리고 함흥촌에 들어가오. 온 조선이 불바다로 될 마당에 안전하지 못하오.”

진달래는 철색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버리었다.

“이제 마음 놓고 함께 살자 하니까요…”

성칠은 도도거리는 진달래를 보고 핀잔을 주었다.

“어째 유격대 중대장답지 않은 소릴 하오?”

진달래는 경수에게 옷을 입혀 주면서 뾰로통해 했다.

“뭐가 두려워서 함흥 촌으로 들어가야 하는가요?”

“전쟁이란 건 어떻게 될지 모르오. 미국 놈들이 인천으로 등륙했소. 우리 조선 어디나 후방이 없게 되기 쉽소. 모두 전쟁터로 될 각오를 해야 하오.”

“나도 당신과 함께 부대를 따라 전쟁에 참가하고 싶어요. 미국 놈들을 몰아내지 않콘 편안한 날이 있겠어요?”

성칠은 경주에게 가방을 메워주면서 진달래를 건너다보았다.

“당신 이젠 어린애 둘을 가진 40대 초반 여성이오. 두말 하지 말고 애들을 데리고 함흥 촌에 가서 동생네 집에 피신해 있소. 함흥촌의 막내조카 상순은 영월구 공안국 국장으로 됐다오.”

진달래는 놀랐다.

“그래요? 상순 조카는 항일전쟁 때도 우리 유격대를 도와 숱한 쌀을 보내오더니. 당신한테서 사격과 격투를 배운 덕이 있구먼요.”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 애비를 닮아 욱 하는 불같은 성미 흠이지. 숱한 조카들 중 다른 놈이야. 어쨌든 아이 때부터 역빠르던 애들이 다르다니까.”

진달래는 경주와 경수를 곁눈질했다.

“애들이 상순 조카를 닮았으면 좋겠어요.”

“설마 경주까지 상순을 닮기야 하겠소?”

그 말에 진달래는 뾰로통해서 앵돌아졌다.

“또, 또. 쪽을 놔요? 경수나 경주나 다 우리 자식이 아닌가요?”

“그래, 그래. 다 우리 자식이지.”

그제야 성칠은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화제를 돌리었다.

“용천 대장은 살아 있다는데 아마 남조선에 나간 거 같소. 연변에나 우리 조선에 있으면 왜 오지 않겠소?”

“글쎄? 모두 다 운명이겠지요. 우리는 중국에서 나오면서 부대채로 재편성되지 못해 사처에 흩어지는 바람에 용천 대장이 찾기 힘들었겠지요.”

경주가 경수를 데리고 마당에 나가 퐁퐁 뛰며 뛰놀았다.

진달래는 애들을 희귀해 내다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전쟁 나서 잘 됐어요. 38선이 무너지면 혹시 경주 아빠를 만나겠는지 알아요?”

“그래 찾으면 용천 대장한테 가겠소?”

성난 성칠의 얼굴을 보며 진달래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

그녀는 일어나 성칠을 끌어안으면서 몸을 흔들거리었다.

“근심 말아요. 내가 어떻게 얻은 성칠 연대장인데 은녀한테 빼앗기자고?”

“어린 애같이 놀지 마오. 쯧쯧. 명천에 가서 은녀와 경수도 데리고 연변에 들어가오.”

성칠은 권총집을 바로 잡더니 바깥으로 훌 나갔다.

“알았어요. 한 고향 여동생을 떼놓을 수 있어요?”

진달래는 연변으로 들어갈 짐을 챙기느라고 궤짝을 번지고 난장판을 벌리었다.

경주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어머니한테 캐고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데 갑니까?”

“몰라도 돼.”

“왜 전쟁 하면 경주 아버지를 만나겠는지 했어?”

진달래는 놀라 궤짝을 뒤지던 손을 멈추었다.

“경주야, 너하고 경수 아버진 우리 집에 있어. 이제 전쟁 나면 언제 만나겠는가는 말이야.”

“아니야. 내 이젠 여러 번 들었어. 경수 아버지, 경주 아버지 하는 말을.”

진달래는 경주를 안아주면서 타일렀다.

“얘가 정말, 이후엔 다시 그런 말 하면 못써. 알아?”

경주는 입이 뾰로통해 억지로 머리를 가늘게 까딱이었다.

훈련장에는 벌써 전신 무장한 장병들이 집합해 대열을 짓느라고 구령소리 요란했다.

진달래는 보따리를 이더니 경수를 업고 경주의 손을 잡아끌고 훈련장으로 나갔다.

성칠은 다가와 진달래의 잔등에 업힌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손바닥과 손등이 다르다더니 제 새끼만 뽀뽀해?)

진달래의 그런 속마음을 읽은 듯이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쥔 경주의 볼을 매만지었다.

“경주야, 엄마 함께 연변에 가 잘 있어라.”

경주는 머리를 끄덕였다.

“예. 아빠.”

“그래, 경주와 경수,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예.”

애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성칠은 진달래의 손을 잡아주었다.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고생하겠소? 상순이 국장을 하는 영월구 공안국에 가오.”

“알았어요. 함흥촌에 가든지 하겠어요. 우리 근심하지 말고 몸 조심해요.”

“양, 전쟁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소? 근심하지 말고 애들이나 잘 키우오. 전쟁이 언제 끝나겠는지 그때 고향에 데리러 갈게.”
“전쟁터에서 미제 공중 날강도를 주의하세요.”

성칠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진달래가 철색얼굴을 찡그리며 뽀로통해 중얼거렸다.
"항일전쟁이 끝난지 이제 5년 밖에 안되는데 왜 또 전쟁 한대요?"
성칠은 자못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의 영명한 령도아래 정의전쟁으로 미제침략자를 조선반도에서 몰아내야 하오. 미제 침략자 괴수 맥아더는 인천에 상륙한 후 무슨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압록강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했소. 미국 놈들의 침략야심이 만천하에 드러났소.  미제는 남조선을 식민지 통치를 하면서도 모자라 우리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사회주의 조국을 먹어치우고 나아가서 사회주의 대후방인 중국을 치려고 미쳐날뛰고 있소. 우린 미체 침략자들의 콧대를 꺾어놔야 하오. 이 기회에 미제 승냥이들의 철발굽 밑에서 신임하는 남조선을 해방해야 하오."
진달래는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미국 놈들이 염치없어요. 태평양 건너 놈들, 제놈들이 뭐간디 남조선을 통치하고 우리 조선을 먹어치려고 해요?"

이때 칠백이 걸어와 진달래의 손을 잡은 경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주야, 삼촌이 올 때까지 잘 있어라.”

“예.”

칠백은 경주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을 맛 비비었다.

“아야, 삼촌, 수염이 꺼슬꺼슬 해. 아프다.”

경주는 칠백이 얼굴을 두 손으로 떠밀었다.

칠백은 경주를 내려놓고 진달래의 잔등에 업힌 경수의 볼을 매만지었다.

“아주머니, 어떻게 고생하겠소. 혹시 전투마당에서 용천 형님을 찾을 수도…”

칠백은 성칠을 흘끔 보며 뒤 말을 삼켜버렸다.
진달래는 성칠과 칠백을 번갈아 보더니 역으로 나가면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심심산골에 백도라지

한두 뿌리만 캐어도

스리 살살 애간장을 다 녹인다.

 

진달래는 경수를 업고 경주의 손을 잡고 보꾸러미를 이고 비틀비틀 업동역으로 걸어갔다. 성칠은 진달래의 처량한 뒷모습을 보고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저쪽에 은녀가 애를 데리고 오도카니 서서 진달래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 시리게 보이었다. 

이때 장병들은 대렬을 지어서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우렁차게 불르고 있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우에
           력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빛나는 우리의 장군
           아 -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 장군

노래 끝나자 칠백 대대장이 성칠이네 쪽으로 걸어왔다.

“김 연대장, 출발준비가 다 됐습니다.”

성칠은 장병들의 대오를 돌아보았다.
"동지들, 우린 위대한 김일성 장군의 영명한 령도아래 일제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이 땅에 우리 위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가난한 인민들은 진정 나라의 주인이 돼 사회주의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미제 전쟁미치광이들은 우리 사회주의 조국을 침략해 우리 나라 인민들의 안정하고 행복한 생활을 빼앗아가려고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우린  위대한 령수 김일성 장군의 령도아래 미제 침략자들과 이승만 괴뢰군을 꼭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합니다. 우리 정의의 전쟁은 꼭 승리할 것입니다. 동지들 신심이 있습니까?“
전체 장병들은 총을 쳐들고 우레처럼 고함쳤다.
"있습니다!"
성칠 연대장은 손을 남쪽으로 홱 휘둘렀다.
"출발!”
전투대오는 남으로 진군하였다. 

그들의 뒤로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동부전선 상급부대 박송천 수장의 명령에 따라 성칠이 거느린 연대는 산을 넘고 령을 넘어 남쪽으로 진군했다. 동부전선 진군 길에서 조선인민군 부상병들을 실은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북으로 들어오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낮에는 미군 전투기가 두려워 행군하지 못하고 수림 속에 숨어 있다가도 밤이면 령 길을 타고 행군했다. 전선과 가까워질수록 포성이 더 요란했다. 어두운 밤 하늘에 드문드문 뻘건 화광이 번쩍이었다.

성칠이 거느린 연대는 밤중 어둠을 타서 자그마한 강을 사이에 두고 깎아지른 산봉우리에 포진해 한국군과 대치해했다. 연대지휘부는 산봉오리 깎아지른 절벽에 쑥 들어간 홈채기를 의지해 세워졌다. 
성칠은 망원경을 들고 엄페호에서 희미한 달빛을 빌어 맞은켠 산에 웅크리고 있는 적진을 세심히 살폈다. 

싸늘한 별이 바르르 떨고 눈썹달이 가을 밤바람에 포화에 그은 구름과 함께 동으로 밀려가면서 쓸쓸하게 산마루를 비추고 있었다. 전운에 그은 달빛이 사나운 들말 같은 먹구름을 몰고 달려지나갔다. 대지는 공포스러운 달빛에 몸살을 앓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쿵쿵- 쿵쿵

씩-

쾅! 꽈르릉 꽝!

삽시에 포탄이 날아와 산마루에서 연달아 폭발했다. 바위돌이 부서져 매섭게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사처에 튕겨났다.

“엎드렷!”

성칠은 연대 지휘부로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고함쳤다.

칠백 대대장과 성칠 연대장은 장막 밖에 달려 나가 나무 밑에 엎드렸다. 포탄 파편에 나무 허리가 뭉텅 끊어져 그들의 잔등 우에 마구 떨어졌다.

“제길! 저 놈들이 우리 지휘부를 정찰한 듯이 포격한단 말이야!”

성칠과 칠백이 두덜거리며 금방 허리를 펴며 머리를 들었을 때다.

“보고!”

통신원이 기어와 고함쳤다.

“적들이 돌격해 오고 있습니다.”

성칠이 먹칠한듯이 깜깜한 산 아래를 아무리 내려다보아도 대체 한국군 병력이 얼마나 습격해 오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탱크의 엔진소리와 무한궤도가 접히는 요란한 소리가 산 아래에서 들릴 뿐이었다.

“괴뢰군은 야밤전투를 하기 싫어한다더니. 웬 일이야? 야밤전투와 유격전쟁에 이골이 튼 우리 영용한 조선인민군과 감히 야밤에 싸워 볼 예산인가?”

칠백은 두덜거리었다.
“우리 발을 붙이기 전에 진공하는 개수작이야.”

“흥, 어림도 없어!”

성칠은 코웃음 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통신원!”

“옛!”

“임호 중대장을 불러오라!”

이윽고 로지심 같은 임호가 달려왔다.

“임 중대장은 폭파소조를 무어 적군의 탱크를 까부시라!”

“옛!”

성칠은 로흑산에서 일본 보루를 까부신 전공을 세운 임호를 관건적인 전투시각에 또 내세웠다.

임호가 떠나가자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며 칠백을 돌아보았다.

“1 대대장은 저 산 아래로 우회해 내려가 저 놈들의 뒤통수를 쳐라!”

“옛!”

칠백 대대장은 숱한 지휘관들 앞이라 엄숙하게 군례를 척 붙이고 즉시 자기 대대로 달려갔다.

“최동욱과 김인삼 대대장은 우리를 습격하는 적들을 막아라!”

“옛!”

대대장들이 떠나가자 성칠은 끊어진 나무 밑에 엎드려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미군이 코밑에까지 기어 올라왔다.희미한 달빛아래 철갑모와 총칼이 번뜩이었다.
땅! 땅!

미군이 쏜 총알이 쓰러진 나무에 박히며 나무껍질이 마구 튕기었다.

“사격!”

성칠은 권총을 산 아래로 휘둘렀다.

따르륵 따르륵!

기관총 소리와 함께 한국군 병사들이 무리로 쓰러졌다.

꽈르릉!

요란한 폭파굉음과 함께 화광이 충천했다. 삼단같이 치솟는 불길 속에서 탱크 위 뚜껑이 열렸다. 온 몸에 불이 달린 몇몇 병사들이 뛰어 내려 때굴때굴 뒹굴었다. 허나 그들의 몸에 달린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미군은 악을 쓰고 산 위에 사격하며 덮쳐들었다. 성칠의 전사들도 산우에서 비명을 지르며 무리로 쓰러졌다.

이때 산우로 덮쳐오던 미군 장병들의 뒤에서 사격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칠백이네 해냈군!”

성칠은 주먹으로 땅바닥을 꽝 치며 벌떡 일어났다.

땅!

난데없는 총알이 날아와 성칠의 왼팔을 꿰뚫고 나갔다.

“아이쿠!”

성칠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한쪽으로 휘뚱거리더니 푹 꼬꾸라졌다.

“김 연대장!”

호위병이 급히 성칠을 끌어안았다.

이때 미군 병사가 바위 뒤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또 사격했다.

땅!

성칠의 옆에 섰던 통신원이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졌다.

땅!

호위병이 쏜 총에 미군 병사의 머리가 박살났다. 뻘건 피가 바위에 마구 튕기었다.

“군의! 김 연대장이 부상당했소!”

이윽고 군의가 달려왔다.

성칠의 왼팔은 관통상을 받아 군복에 뻘건 피가 질벅했다. 군의는 호위병이 비추는 전지 불을 빌어 성칠의 왼쪽팔의 상처를 붕대로 감았다. 드디어 나뭇가지를 꺾어 팔꿈치로부터 손목 밑에까지 대고 붕대로 동이고 어깨 넘어 붕대로 처매주었다.

“철퇴!”

산 아래에서 소리치는 확성기소리가 산정에까지 울려 왔다.

미군은 숱한 시체를 남기고 산 아래로 퇴각했다. 조선인민군도 산우에 숱한 시체를 남기었다. 그들은 군의 자존심을 걸고 각기 자기 진지에서 짧은 삽으로 전호를 파고 다음 전투를 초조히 대기했다.

포화에 그은 구름이 걷히며 잠시나마 눈썹달이 대지를 내리 비추었다. 산비탈 여기 저기에서 포탄과 수류탄 파편에 잘려나간 나무 밑 둥에 불이 활활 타 번지고 있었다.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먼 산길을 행군해 오면서 퍽 곤했다. 총소리가 멎고 엎드릴만한 전호를 파자마자 전호 안에 쪼크리고 앉아 코를 드렁드렁 고는 병사들도 있었다.

성칠도 임시 연대 지휘부를 절벽 밑에 판 전호로 옮긴 후 왼팔의 통증을 느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대체 적들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는 해가 뜨기를 기다릴 수 없었다.

“통신원!”

옆에서 호위병 장꼬마가 알렸다.

“통신원은 희생됐습니다.”

“아, 그랬지. 장 꼬마, 정찰소대 바위돌 소대장을 불러오오.”

“옛!”

이윽고 바위돌 소대장이 뛰어왔다.

“보고!”

“석 소대장, 정찰병 둘을 데리고 가서 혀를 잡아 오오.”

씩-

쿵!

포탄 폭파 굉음과 함께 바위돌은 두 정찰병을 데리고 전호를 뛰어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적들이 또 진공합니다.”

“전투 준비!”
분명 이번에는 한국군이 진공해왔다. 그들은 미군과 함께 겨끔내기로 진공하면서 조선인민군이 쉬지 못하게 피로전술을 쓰고 있었다.

이때 하늘에 조명탄이 날아올랐다. 산마루와 산비탈을 대낮같이 비추었다. 남쪽 하늘에서 비행기 몇 대까지 쌩- 쌩- 날아왔다.

드디어 산마루에 폭탄이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조선인민군들은 악이 나 경기관총으로 전투기를 갈겼다. 전투기들은 전투편대를 지어 저공비행을 하지 못하고 일정한 고도로 골짜기를 따라 날아오다가도 기수를 쳐들면서 소사하고는 꽁무니를 뺐다. 전투기들은 겨끔내기로 20여분 동안이나 소사하고 소이탄을 내리 떨어뜨리더니 어디론가 날아갔다.

고지는 불바다로 돼 버렸다. 사처에서 인민군 장병들의 주검이 나뒹굴고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들리었다.

괴뢰군은 미군 탱크들이 포신을 고지에 돌려 대고 맹사격을 하자 진공을 개시했다.

포성이 하늘땅을 진동치며 화광이 번쩍이는 어둠 속에서 산 아래로부터 진공해 올라오는 괴뢰군의 아우성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괴뢰군들이 철갑모를 번뜩이며 탱크 뒤에 딱 붙어 고함치며 고지를 진공해왔다.
"빨갱이들을 모조리 소멸하라!” 

이번에는 임호 중대장도 더는 탱크를 폭파할 수 없었다. 수류탄이 다 떨어졌던 것이다.

탱크는 맹포격을 가하면서 밋밋한 쪽의 산비탈을 타고 무서운 엔진소리를 내면서 고지를 향해 돌진해 왔다.

성칠은 코 밑에까지 기어오는 괴뢰군을 보고 “철퇴!” 하고 고함치더니 머리를 돌려 경호원 장 꼬마에게 명령했다.

“각 대대에 철퇴 명령을 전하오! 빨리!”

“옛!”

전 연대는 임호 중대장이 한 개 중대 병력으로 엄호하고 철퇴하기 시작했다. 성칠 연대장이 영솔한 장병들은 하루 밤도 뻗치지 못하고 무명고지를 내주고 철퇴하고 말았다.

괴뢰군은 무명고지를 점령하고 인민군 장병들의 시체를 전호에서 내 버리고 전호를 깊이 파서 정비한 후 인차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무명고지에는 핏빛으로 그은 화염이 하늘을 찔렀다. 이따금 눈먼 포탄이 날아왔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돌멩이와 시체 쪼각이 자주빛 화염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사처로 흩어져 떨어졌다.

 

2. 혀를 생포

숱한 희생을 내고 무명고지를 빼앗긴 성칠은 5리나 철퇴해 진을 치고 복수의 칼을 갈았다.

성칠은 풍막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이를 뻑뻑 갈았다.

김칠백 대대장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두덜거렸다.

“항일전쟁 때와는 달리 그 놈의 전투기가 문제요. 고지에 기어 올라오는 놈들과 싸우자 하면 그 놈의 전투기가 날아와 우리 꼭뒤를 누른단 말이요.”

성칠은 대대장들에게 귀띔했다.

“이번 전쟁은 세계에서 제일 강대하느라고 우쭐렁거리는 미군과 싸우는 거요. 우린  지상의 적들과 공중을 동시에 대적해야 하오.  미군 인천등륙 후 적군의 사기는 전례없이 높소. 이제 바위돌 소대장이 혀를 잡아 오면 적정을 알아낸 후 새 자전계획을 세우기오. 기어이 무명고지를 빼앗아 내야지. 미제와 괴뢰군이 절대 우리 잔등을 밟고 우리 고향 명천에까지 쳐들어가게 할 순 없어. 이제 오래지 않아 중국인민지원군까지 우리를 지원해 용맹히 싸우고 있소. 승리는 우리 것이오.”

최동욱 대대장이 근육이 울뚝불뚝한 팔을 휘둘렀다.

“무명고지에서 십리도 더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지.”

바깥에서는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허연 번개가 귀신처럼 풍막 안에까지 날아 들어왔다가 나가면서 천지가 맞붙을 듯이 우레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대살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화광이 충천하던 무명고지의 불이 소낙비에 꺼졌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공포의 어둠이 더 두껍게 깔리었다.

바위돌은 정찰병 조철호와 신기출을 데리고 허리를 구부정하고 어둠의 장막을 헤치며 살금살금 한국군이 점령한 무명고지로 다가갔다.

장대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소리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와 나무숲을 헤치는 소리를 감싸 감춰주었다.

씩- 씩-

하늘에 조명탄이 날아오르더니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무명고지를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었다. 절벽 아래 뭉텅뭉텅 끊어진 나무들과 여기 저기 쳐놓은 장막 그리고 돌각 담 같은 전호도 드문드문 윤곽을 드러냈다. 여기저기 보초를 서고 있는 철갑모들이 조명등 불빛에 번뜩거리었다. 조명등이 꺼지는 순간 엎드려 기던 바위돌 네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재빨리 무명고지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또 조명등이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산마루와 골짜기 그리고 산비탈에 게딱지처럼 들어앉은 장막들이 재차 잔등을 드러냈다. 바위돌은 조철호와 신기출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그들은 일제히 질척질척한 산비탈에 납작 엎드렸다. 초가을 소낙비가 쏟아져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려운 밤이지만 조명등을 빌어 무명고지 중턱에 반자동보총을 쥔 보초병이 왔다 갔다 하고 전호에 친 숱한 장막이 지척에 보이었다. 산마루 절벽 아래 연대 지휘부로 쓰던 자리에 특별히 철조망을 촘촘히 늘인 것을 보아 괴뢰군 지휘부가 설치돼 있는 것 같았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지만 군용비옷을 입었기에 괜찮았다. 조명등이 비추어도 군용외투가 검회색이어서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황차 공교롭게도 괴뢰군의 풍막과 바위돌 네가 입은 군용비옷의 색깔이 비슷했다.

바위돌은 소낙비를 맞으면서 어떻게 하면 괴뢰군 지휘부로 접근해 장교를 잡아 갈 것인가를 궁리했다.

그는 조철호와 신기철을 툭툭 치더니 귓속말을 했다.

“이제 조명등이 꺼지면 먼저 보초병을 해치우고 지휘부로 잠입해 장교를 잡기요.”

철호와 기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조명등이 꺼졌다.

바위돌이 팔을 홱 휘두르자 조철호가 보초병이 왔다 갔다 하는 밑에까지 기어갔다. 보초병이 소나무 밑으로 왔다가 돌아설 때다. 철호가 벌떡 일어나 보초병의 목을 끌어안고 비수를 번쩍 휘둘렀다. 뒤이어 철호는 보초병의 철갑모를 벗겨 쓰고 반자동보총을 주어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보초를 서는 시늉을 했다.

바위돌과 신기철은 폭탄 파편에 허리가 뭉텅뭉텅 끊어진 소나무 사이로 허리를 구부정하고 연대 지휘소로 보이는 절벽 밑의 장막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장막 안에서 장교가 우산을 들고 불쑥 나왔다. 바위돌과 신기철은 끊어진 소나무 뒤에 몸을 살짝 숨기었다. 장교는 소낙비 쏟아지는 사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자동보총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조철호를 보고 보초병으로 알고 시름을 놓았는지 절벽 쪽에 돌아서더니 괴춤을 까고 오줌을 내싸는 것이었다.

바위돌은 신기철을 돌아보며 머리를 앞으로 휘저었다. 신기철은 원 작전대로 슬금슬금 장막으로 다가가 망을 보았다. 동시에 바위돌은 비수를 뽑아들고 그 장교의 뒤에 살금살금 발끝걸음으로 다가갔다.

장교는 소낙비소리에 동정을 알지도 못하고 오줌을 누면서 추운지 우들우들 떨어댔다.

철호가 불시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면서 시퍼런 비수를 목에 댔다.

“꼼짝 말라! 까딱 하면 죽인다!”

“엇! 어, 어.”

장교는 깜짝 놀라 우산을 떨어뜨리었다.

바위돌은 장교의 허리춤에서 권총을 쑥 뽑아냈다. 장교는 어깨를 툭 떨어뜨리더니 바지춤을 춰 입었다.

“우릴 따라 순순히 가자!”

이때 불시에 조명등이 하늘 공중에 씩씩 솟아오르더니 대낮같이 환히 비추었다. 그제야 침착성을 찾은 장교는 손을 천천히 들면서 몸을 돌리더니 비수를 자기 목에 댄 바위돌을 쳐다보았다. 그는 억수로 쏟아지는 대줄기 같은 빗발 속에 총을 들고 이쪽을 흘끔거리는 조철호를 힐끔 곁눈질했다.

(저 놈이 보초를 어떻게 서는고?)

“에헴!”

장교는 보초 서는 철호가 자기 편 보초병인가고 들으라고 마른기침을 했다.

“잔꾀를 부리지 마라! 걸어!”

바위돌은 장교의 잔등을 떠밀었다.

장교는 발에 뿌리가 내린 듯이 걷지 않으려고 뻗치었다.

그때 갑자기 이동 순라 병들이 억수로 쏟아지는 소낙비를 무릅쓰고 전호 속에서 척척 걸어 나와 절벽 밑으로 다가왔다.

“인민군이야!”

장교가 바위돌을 뒤발로 차며 고함쳤다.

보초병들은 총을 벗어들고 이쪽에 겨누었다.

바위돌은 손으로 장교의 목덜미를 탁 쳤다. 꼬꾸라지는 장교를 제꺽 끌어안고 전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땅! 땅! 땅!

한국군 순라 병들이 쏜 총알이 전호 벽에 박히면서 흙꼬치 튕기었다.

이때 조철호가 순라 병들에게 한 배짐 갈기었다. 장막 안에서 괴뢰군 둘이 뛰어 나오다가 쓰러졌다.

그 틈을 타 바위돌은 장교를 둘러메고 전호 속에서 뛰쳐나갔다. 뒤이어 괴뢰군 장교를 끌어안고 산비탈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 내려갔다. 산기슭에 내려가자 그는 벌떡 일어나 장교를 둘러메고 산 아래로 냅다 뛰었다.

뒤에서 조철호와 신기철은 무리로 덮쳐드는 한국군 장병들에게 맹사격을 가하면서 엄호했다.

따르륵 따르륵

기관총 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다.

“앗!”

신기철이 가슴을 붙안고 몸을 한쪽으로 틀더니 푹 꼬꾸라졌다.

“기철이! 기철이!”

조철호는 쓰러진 기철을 흔들었다.

기철은 피가 질벅한 가슴을 붙안은 채 철호를 가라고 손짓했다.

“빨, 빨리 가오. 난 글, 글렀소.”

허나 조철호는 괴뢰군에게 사격하면서 기철을 끌어안아 일으켜 업으려고 했다.

“다 죽어! 어서 가, 가!”

기철은 안간힘을 다해 철호를 밀어냈다. 그는 간신히 몸 밑에서 돌격총을  빼내 괴뢰군에게 사격했다.

픽!

총소리와 함께 기철은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조철호가 머리를 만져보니 비참하게도 두개골이 반쪽이나 날아나 버린 채 피 범벅이 됐던 것이다.

“기철이!”

조철호는 이를 악물고 소낙비 속에서 악착스럽게 덮쳐오는 괴뢰군에게 사격하면서 퇴각했다.

이때 바위돌이 개선하는 신호탄을 하늘 공중에 쏘았다.

쿵! 쿵! 쿵!

포탄이 씽씽 날아와 무명고지에 떨어졌다.

꽝! 꽝! 꽈르릉!

소나무들이 뭉텅뭉텅 날아나고 주먹만큼 한 돌멩이들이 소낙비 속에 사처로 날아났다. 숱한 한국군 장병들이 포탄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괴뢰군은 인민군의 맹렬한 포화 속에 황급히 철퇴하여 전호 속에 뛰어 들어갔다. 그제야 조철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쏜살같이 달려 바위돌을 따라잡았다.

“소대장! 내 업읍시다.”

바위돌은 장교를 내리워 놓았다. 철호가 업으려는데 장교가 정신을 차리고 장대기처럼 꿋꿋이 섰다.

“이 놈! 떼질 쓰지 말고 고분고분 말 들어! 우리 인민군은 포로를 우대한다!”

“걸어!”

장교는 주위를 둘러보아도 동료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절벽 밑 장막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짜기에 들어선 것을 보고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제야 그는 순순히 바위돌과 조철호의 중간에 서서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기철은?”

“희생됐습니다. 다 이 놈 탓입니다.”

철호는 자동보총으로 장교의 엉덩이를 툭 쳤다.

“포로를 이렇게 우대해?!”

“개소릴 작작 쳐!”

그들의 뒤에서는 아직도 포탄이 폭파굉음이 요란하고 화광이 충천했다.

바위돌과 조철호는 장교를 압송해 두 시간도 안 돼 연대 지휘소 풍막 안으로 돌아왔다.

성칠 연대장은 뒤에 기철이 안 보이자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기철 동무는?”

바위돌은 머리를 푹 떨어뜨렸다.

“장렬하게 희생됐습니다.”

조철호는 장교를 발길로 차면서 통곡했다.

“다 이 놈 탓입니다. 으흐흑.”

성칠 연대장은 남포등불빛을 빌어 장교를 쏘아보다가 걸상을 괴뢰군 포로에게 주었다.

“앉아.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을 솔직히 대답해!”

허나 괴뢰군 장교는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난 당당한 괴뢰군 대대장이다. 빨갱이 놈들, 더 능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성칠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우린 포로를 우대하네. 노실이 탄백하면 절대 죽이지 않아.”

그래도 장교는 머리를 홰홰 흔들었다.

“네 놈은 이름이 뭐냐?”

“이병수야.”

“이병수?”

이상하게 성칠은 되물었다.

“맞아. 난 한국 땅을 밟고 하늘을 떠인 사내대장부여. 절대 이름 안 속여.”

턱을 쳐들고 풍막천정을 쳐다보는 이병수를 보고 성칠은 코웃음을 쳤다.

“네 고향은 어디냐?”

“그 따위 물어 뭘 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일본 수군을 족치던 한산 섬이야. 네 놈들은 아무리 발악해도 내 고향 한산섬까지 점령하진 못해. 아니, 한산 섬은커녕 서천군 한산면도 넘어가지 못해. 우리 슬기로운 한국군 백호부대는 미군과 함께 압록강에까지 쳐들어 갈 거야. 백골부대 장병들은 고향 함경도까지 쳐들어갈 거야. 이 놈들아, 내 입에서 한마디도 들으려니 말고 어서 한방에 죽여!”

성칠은 책상을 꽝 치며 고함쳤다.

“주둥이를 다물지 못해! 여긴 담판석이 아니야. 우리 영용무쌍한 조선인민군은 부산을 치고 한삼 섬과 제주도까지 쳐나가 해방할 수 있다!”

이병수는 코웃음을 쳤다.

성칠은 장 꼬마와 바위돌을 돌아보더니 몽땅 나가라고 분부했다.

이젠 성칠은 이병수와 단둘이 풍막 안에 남았다.

“고향은 한산, 이름은 뭐 이병수라 했느냐?”

성칠의 부드러워진 어조에 이병수는 이상한 눈길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왜?”

“무슨 이씨인가?”

“불시에 남의 족보를 따져 뭐해?”

“글쎄 알아볼 게 있어.”

“난 한산 이씨야. 그 집도 이 씨인가? 이조 500년을 통치한 그 왕족 전주 이 씨인가?”

“한산 이씨라?” 성칠은 중얼거리면서 이병수의 두부모 같이 네모진 얼굴과 부리부리한 눈을 훑어보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적스적 이병수한테 다가오더니 나직이 물었다.

“혹시 네 고향 한산에서 이성군이나 이명호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 분들도 한산 이 씨라고 했는데.”

“뭐라?”

이병수도 놀란 눈길로 성칠을 쳐다보았다.

“당신 한산 이 씨지? 당신 누구여?”

“아니야. 난 김 씨네.”

“뭐라? 그럼 자넨 누구야?”

“묻는 말이나 해라. 한산 이씨 이성군과 이명호라는 사람 아는가?”

“몰라. 그 사람 찾아 뭘 해?”

“네가 한 고향이라니 그래. 외삼촌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한산 섬까지 우리 군이 쳐들어간 것도 아닌데. 어디로 갔을까?”

성칠이 뒤지개를 짚고 거닐면서 나직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병수도 일어났다.

“금방 뭐라고 했어? 외삼촌을 찾는다고 했어?”

성칠은 머리를 들어 이병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 외삼촌을 20여 년 전에 보고 일본 놈들에게 쫓기다나니 다신 보지 못했네. 우리 군이 지난 여름 기세로 낙동강을 건넜더라면 한산 섬에까지 나가 외삼촌을 찾아봤겠는데 말이야.”

“외삼촌이란 분이 이성군인가 베?”

“그래, 내 외삼촌이야. 우리 엄마는 생전에 오라비와 조카 명호 그리고 손자 이병수와 이영수를 얼마나 외웠는지 모르네. 3.8선에 가로 막혀 찾지 못했어. 3.8선이 무너진 마당에 찾을 거 같아 그러는데. 난 자네가 이병수라고 하니 혹시나 해 그러네. 후- 한산에 계시지 않는다니 별 수 없군 그려.”

이병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점점 다가오니 불시에 무릎을 꿇고 풍덩 물앉았다.

“이보시오. 이성군은 울 할아버지고 이명호는 아버지고요 이병수는 내라고요.”

“아니, 네가 정말 이병수냐?”

성칠도 쭈그리고 앉으며 이병수를 와락 끌어안았다.

“삼촌! 흑, 흑.”

병수도 성칠의 넓적한 잔등을 끌어안았다. 총을 맞대고 싸우던 적이라는 높고 두꺼운 장벽은 와그르르 무너지고 그 페허를 넘어 혈육의 피가 서로 합류했다.

장 꼬마는 풍막 문 귀를 슬며시 들고 그 장면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성칠도 눈치를 챘지만 그치지 않았다.

“너를 이런 전쟁터에서 만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참 후 성칠은 두 손으로 병수의 양어깨를 쥐고 너부죽한 얼굴을 들여다보며 장탄식했다.

“엄마가 널 봤더라면 얼마나 반가와 했겠니?”

병수도 친 혈육의 정이 온 몸에 흘러넘쳐나는 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삼촌, 할머님의 막내손자 상순이라고 있었죠?”

“그래, 그 앤 지금 간도 영월구 공안국 국장으로 됐어.”

“오- 잘 됐구나. 승급하면 작은 삼촌이랑 잘 모시겠제이. 아들이 국장이면 작은 삼촌을 모셔다 호강시키겠제라. 지금쯤 농사도 짓지 않고 시가지에 모셔갔제이?”

“넌 몰라.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대공무사하다. 직권을 빌어 농사꾼을 시내 공호로 고칠 수 없다. 상순은 아버지를 농촌에 모시고 있다.”

병수는 삼촌을 따라 일어나면서 도리머리 질 했다.

“쯧쯧, 아버지도 온전히 모시지 못하면서 국장을 해 뭐 해요?”

성칠은 병수와 나란히 앉아 어깨를 끌어안고 나직이 물었다.

“그래 외삼촌은 잘 계시냐?”

병수는 울먹울먹해 하며 목구멍에 뭣이 걸린 듯이 겨우 나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할아버지는 20여 년 전에 아버지와 나를 데리고 두 번째로 명천에 갔다가 할머니와 삼촌들이 간도에 가셨다는 말을 듣고 무너진 집터를 보고 대성통곡하였어요. 할아버진 내내 할머니캉 삼촌들을 외우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우리캉 언젠가는 38선이 무너지면 꼭 간도에 가서 할머니를 찾아보시라고 하셨어요. 흐흑, 흑흑흑.”

성칠도 코마루가 시큼해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래 아버지는 무사히 계시냐?”

“예. 아버진 항상 성칠 삼촌이 어떻게나 힘이 센지 곰도 부자간이 맨 주먹으로 때려잡은 적도 있다고 했어요. 아버진 또 고모부가 목수재간이 대단하고 힘도 대단해 명천바닥에 천하장사시었다고 하던데요. 할아버진 무고하셔요?”

“응, 그래. 지금 마을 당 지부 서기에 촌장 일을 한다.”

“그럼 할아버지도 빨갱이예요?”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울 아버진 함흥촌의 촌장이자 서기야.”

“빨갱이 해 뭘 해요? 부자를 털고 죽이고 빼앗아 나눠 가진다던데요. 빨갱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밥 먹듯 한다던데요.”

성칠은 성난 눈길로 병수를 바라보았다.

“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린 가난한 사람들을 혹독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지주들을 청산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과 땅을 나눠 주었다. 이 세상에서 압박과 착취가 없이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밭에서 일하고 똑 같이 나눠 먹으면서 모두 행복하게 사는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다.”

“아, 그래요. 참 좋은 일하누먼. 우리 한국에도 남로당이 거느린 빨찌산들이 그런 세상 만든다고 지리산에서 싸운다던데요. 되겠어요?”

병수는 머리를 홰홰 내저었다.

“너도 남조선에 있는 조선인민군이 영도하는 빨찌산에 들어라.”

“글잖아도 동생 영수가 남로당인가 뭔가 하는데 들어서 지금 지리산 일대에서 싸우고 있제이. 이게 무슨 꼴이지? 형제간에. 난 빨갱이들캉, 아니, 공산군과 싸우는데 그 자식은 빨갱이들캉, 아니, 유격대에 들어 우리 한국 국군 뒤통수를 치고 있잖노?”

성칠은 병수의 귀에 말이 잘 들어가지 않을 걸 알고 그쯤하고 화제를 돌렸다.

“넌 그래 어떻게 돼 입대했냐? 아버지를 도와 물고기를 잡지 않고.”

병수는 한숨을 후 내쉬었다.

“물고기 잡이도 어선이 있어야 하죠. 파도가 어찌나 센지 쪽배를 가지고 무슨 고기를 잡아요? 그런데다가 전쟁이 일어나 인민군이 부산까지 거의 쳐들어온다니까. 나는 동생과 함께 유격대를 따라 지리산에 들어가려고 했어요. 그때 용천 연대장이 군대 모집하러 부산으로부터 우리 고장까지 배를 타고 건너오지 않았겠어요? 뭐, 빨갱이군은 남한 사람들을 몰살시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한국군에 붙잡혀 강박으로 한국군에 입대했지요.”

“가만, 뭐? 용천이?”

“알아요?”

병수는 성칠을 흘끔 쳐다보다가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거 김용천 연대장은 광복 전에 간도에서 유격대 대장이었다지? 혹시 알아요?”

성칠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도리머리 질 했다.

“혹시 고향이 경주라더냐?”

“예, 맞아요. 고향이 경주라던데요.”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 보통 미군과 한국군은 낮에 싸우기 좋아하는데 이상하다 했지. 괴뢰군이 야전에 능하다니. 쳇."

성칠은 병수에게 나직이 “이제부터 삼촌, 조카란 말을 하지 말자.” 라고 했다.

“왜?”

“묻는 말만 대답해라.”

“쳇.”

전쟁 말이 나오자 그들 사이에는 냉전의 분위기가 혈육의 정을 서서히 갈라놓으려고 아득바득 기를 쓰고 있었다.

 

                                      3. 형제
 

풍막 안은 다시 화약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성칠과 병수 숙질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번개가 번쩍이고 들리지 않는 우레가 울렸다.
“장 꼬마, 물!”

“옛!”

장꼬마가 부랴부랴 달려 들어와 컵에 냉수를 부어 주었다.

“말해! 너희들 부대는 어느 소속인가?”

성칠은 냉수를 마시면서 을러멨다.

“우리 천하무적의 백호부대는 미군 인천등륙의 기세를 몰아 이제 무명고지를 깔아뭉개고 두만강과 압록강에까지 쳐들어갈 거야.”

“포로 된 주제에 큰 소리를 땅땅 쳐? 흥!”

성칠 연대장은 참다못해 컵의 물을 병수의 낯에 탁 쳤다.

금방 친 혈육의 정으로 화기애애하던 풍막 안 같지 않았다.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총살해 버리겠어!”

성칠 연대장은 권총을 뽑아 절컥 격발 기를 당겨 책상 우에 탕 놓더니 세 귀 눈으로 병수를 쏘아보았다.

“말해! 저 아래 들판에 병력이 얼마 있어?”

그제야 병수는 머리를 숙이었다.

“한개 사단.”

“무명고지 아래에는?”

“한개 연대.”

“연대장 이름 뭐야?”

“한선주 연대장인데요.”

“한선주?”

“예.”

성칠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한철주 아니고?”

“아니. 우리 한철주 부사단장은 한선주 연대장의 히아(형)인데요.”

“뭣이? 한철주가 부사단장이야?”

“예.”

성칠 연대장은 또다시 자기 귀를 의심했다.

“장 꼬마, 바위돌 소대장과 권 대대장을 불러 오라.”

“옛!”

장 꼬마가 뛰어나갔다.
이윽고 바위돌 소대장과 권칠백 대대장이 급히 들어왔다.

“통신원!”

장 꼬마가 뛰어 들어왔다.

“통신원은 희생됐습니다.”

“아, 그랬지.”

성칠은 장꼬마의 귀에 대고 나직이 “인삼 참모장과 최 대대장도 데려오오.”라고 했다.

“옛!”

이윽고 인삼과 최동욱 대대장이 풍막 안에 들어왔다.

성칠은 그들을 손짓해 옆에 앉게 한 후 심문을 계속했다.

“한철주 부사단장은 혹시 간도로 들어간 적이 없는가?”

“있어요.”

이병수는 이상해 눈초리마저 치뜨며 성칠 연대장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걸 알아요?”

“알고말고. 그 놈은 일제 개다리 부연대장이었어.”

인삼과 동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었다.

“장관은 혹시 항일 유격대 대장 출신인가요?”

“묻는 말이나 대답해. 너희들 부대에는 또 간도에 갔던 장교가 없는가?”

“있제이. 북만 항일 유격대 대장 출신 연대장도 있는지라.”

“이름이 뭐야?”

“무명고지의 김용천 연대장인제라.”

“뭐라고?”

성칠 대장은 놀라 걸상에서 일어나며 칠백을 건너다보았다.

“다시 말해! 누군가?”

칠백은 펄쩍 뛰어 일어나 병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말해! 연대장이 누구야?!”

“김용천 연대장이여.”

병수는 손을 들어 멱살을 틀어쥔 칠백의 손을 풀며 눈을 흘기었다.

“빨갱이 놈 새끼들, 걸게 우리 한철주 부사단장이 빨갱이라면 쌍불을 켰제이. 흥!”

성칠 연대장은 장꼬마가 떠주는 냉수를 받아 꿀꺽꿀꺽 굽을 냈다.

“산 아래에 미군은 없는가?”

“서남쪽으로 한 십리 가면 탱크부대 있제이.”

“이 놈을 끌어 내가!”

“죽이는 기여?”

병수는 겁기 띤 눈길로 성칠을 되돌아보았다.

허나 성칠 연대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머리를 숙인 채 뭔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뒤에서 칠백이가 병수를 잡아먹을 상하며 씩씩거렸다.

바깥에서 번개가 번쩍 하더니 집안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꽈르릉 꽝꽝!

우레 소리가 풍막을 날려 보낼 듯이 울렸다.

성칠은 풍막 천을 들고 때 아닌 가을에 소낙비가 쏟아지는 을씨년스러운 바깥을 내다보았다.

어느덧 대줄기 같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고 있었다. 산줄기들이 소낙비 속에서 윤곽을 천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나무가 우거진 산골짜기를 마주한 산비탈의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천천히 어둠을 벗어버리며 어슴푸레 초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초가집들에 성칠의 부하들이 곤하게 자고 있었던 것이다.

성칠은 인삼 참모장을 돌아다보았다.

“그 놈들이 별스레 우리 전술을 알고 야밤작전을 한다 했더니. 원래 한철주 놈과 용천 대장이구먼.”

그러자 인삼 참모장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정말, 양키 놈들과 싸워보지도 못하고 항일전쟁시기 전우와 싸워야 한단 말이오? 그것도 한 전호 속에서 어깨 겯고 일본 놈들과 싸우던 용천 대장과 말이오.”

칠백은 머리를 점점 더 숙이면서 씩씩거렸다. 이윽고 머리를 번쩍 들더니 주먹을 휘둘러대며 고함쳤다.

“우리 군인은 특수 재료로 만들어진 강철전사들이오!  최전선에 나가면 용천 형님부터 죽여치우겠다! 씹할!”

성칠은 한숨을 후 내쉬었다.

“용천보다도 친일 주구 한철주 형제가  더 문제오. 한철주 놈을 백두산에서 처단하지 못했는데 잘 됐소.”

“우리 보다 세배나 더 되는 놈들 속에 들어박힌 한철주 놈을 어떻게 잡아치우겠소?”

인삼 참모장이 한숨을 후 내쉬었다.

성칠은 인삼 참모장에게 나직이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양~ 거 참, 묘하오. 헌데 그 자가 말을 듣겠소?”

인삼의 말에 성칠은 풍막 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수는 쓰기에 가지. 한번 저 놈과 용천 대장을 믿어 보기요.”

“그렇게 해보지. 전쟁판에서 잃어졌던 용천 형을 만나다니. 참, …” 
성미 급한 칠백은 주먹으로 손바닥을 툭툭 치며 장막 안을 거닐었다.

“새 날이 밝아오는구먼. 눈을 잠간 붙이기요.”

동욱이 곤해 하품을 하며 잠기에 푹 퍼진 소리를 할 때다.

땅! 따르륵 땅땅!

“뭐요?!”

바깥에서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리었다.

“보고!”

“웬 총소린가!”

장 꼬마가 황급히 뛰어 들어왔다.

“적들이 포위했습니다. 어서 피하십시오!”

“뭐라고?!”

성칠의 이마에 지렁이 같은 퍼런 정맥이 살아났다.

“칠백은 한 개 중대 병력으로 엄호하라! 나머지 병력은 즉시 포위를 돌파하라!”

“옛!”

성칠은 칠백의 어깨를 두드렸다.

“5리 밖의 508고지에서 만나자!”

“옛!”

칠백은 성칠에게 군례를 척 붙였다. 그는 풍막을 홱 젖히고 권총을 빼들더니 풍막 밖에서 기다리던 경위원과 함께 자기 대대 쪽으로 절벅절벅 뛰어갔다.

성칠은 소낙비 속으로 사라지는 칠백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장 꼬마한테 머리를 홱 돌렸다.

“당장 포로를 데려오라!”

“옛!”

장꼬마가 나가자 성칠은 인삼 참모장과 동욱 대대장을 돌아보았다.
“먼저 포위를 돌파하고 508고지로 가오.”

“김 연대장은?”

“포로에게 특수임무를 주겠소.”

“그 놈이 말을 듣겠소?”

“괴뢰군 놈들에게 심리전을 써 보겠소. 빨리 포위를 돌파하오.”

“양. 인차 따라 오오.”

성칠은 풍막 안에서 떠나가는 동욱과 인삼에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윽고 장 꼬마가 옆 풍막에서 병수를 데려왔다. 병수는 굳어졌던 네모진 얼굴을 느슨히 풀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지나가는 성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성칠은 장 꼬마를 나가라고 손짓했다.

장 꼬마가 나간 후 성칠은 부드러운 어조로 나직이 말했다.

“널 놔줄 터이니 부탁하자.”

“뭘?”

성칠은 동그래진 병수의 두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 공포에 찬 눈에는 그윽한 혈육의 정이 엿보이었다.

“한철주는 친일 주구야. 그 놈은 간도에서 일본군 부연대장을 한 악질 친일주구야. 용천과 말해 그 놈들을 처단할 수 없겠니?”

병수는 간절한 눈빛을 뿌리는 성칠의 눈길을 피해 발끝에 눈길을 떨어뜨렸다.

“정신 나갔어? 삼촌, 한철주는 우리 부사단장인데요.”

“그 놈은 네 큰어머니를 살해한 원수야.”

“진짜?”

성칠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였다.

“그래, 눈 덮인 백두산 밀림에서 그 놈이 쏜 기관총 흉탄에 네 큰어머니가 살해됐어. 큰어머닌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처참하게 희생됐어. 그 놈을 죽여라.”

따르륵 따르륵

풍막에 구멍이 펑펑 뚫렸다.

“적들이 코앞까지 왔습니다!”

장 꼬마가 풍막을 젖히고 내다보다가 황급히 소리쳤다.

허나 성칠은 아주 태연자약하게 책상 안에서 미제 모젤권총을 꺼내 병수에게 돌려주었다.

“부탁이다! 빨리 우리한테 헛총질을 하면서 뛰어나가라.”

병수는 좋아라고 권총을 받아 쥐고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서라! 서!”
성칠은 뒤따라 나가면서 공중에 헛총을 쏘았다.

병수는 억수로 쏟아지는 대줄기 같은 소낙비 속으로 달아나면서 풍막 쪽 허공에 대고 총을 쏘았다. 이윽고 그는 소나무 밭에 뛰어 들어가 소낙비 속에 몸을 숨겼다.

성칠은 장 꼬마의 엄호를 받으며 풍막 뒤로 빠져 나가 산골짜기에 뛰어 들었다. 병수와 한국 괴뢰군은 사격하며 왝왝 고함쳤다.

한편 야습을 당한 한국 괴뢰군은 한철주 부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용천 연대장과 한선주 연대장의 영솔 밑에 새벽의 어둠을 타 불시에 기습했던 것이다.

용천 연대장은 연대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풍막에 수류탄을 뿌려라!”

병수와 병사들은 풍막에 수류탄을 연신 뿌렸다.

꽝! 꽈르릉 꽝!

풍막이 하늘로 날아났다. 풍막 천 조각이 허리가 잘린 소나무 숲속에 떨어졌다. 풍막자리에는 널판자가 어지러이 널려 있을 뿐 시체 하나 없었다.

이때 산등성이에서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었다.

“원수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겨라!”

한패의 영용무쌍한 조선인민군이 산등성이 바위 뒤에 숨어 이쪽에 맹렬히 사격하는 것이었다. 빗발 속에 섬광이 번쩍였다.

“돌격!”

용천 연대장은 소나무 뒤에 숨어 권총으로 산꼭대기에 대고 휘둘렀다.

한국군 장병들은 산꼭대기를 향해 소낙비 속에서 용감히 진공했다.

땅, 땅!

총알이 저승사자와마냥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왔다.
푱!푱!
용천이 몸을 기댄 소나무에 총알이 꼽히며 소나무껍질이 마구 튕겼다. 그가 대줄기 같은 소낙비 속을 꿰뚫고 여겨보니 숱한 병사들이 산꼭대기에 올라가다가 맹렬한 사격에 삼대 쓰러지듯 했다.

그는 주먹으로 소나무를 꽝꽝 쳐댔다.

“한개 대대가 한 개 중대 빨갱이 놈들을 못 이겨!”

그는 뒤에 대고 고함쳤다.

“1대대 철퇴!”

용천 연대장은 병수 대대장을 돌아보면서 명령했다.

“2대대 진공!”

“옛!”

병수 대대장이 장병들을 영솔해 산마루로 돌격해 올라갔다.

허나 한 개 중대가 엄호하는 새에 성칠의 대부대는 몽땅 포위를 돌파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소낙비가 쏟아지는 소나무숲 속으로 묘연하게 사라졌다.

철거해 내려오는 1대대 부상병들을 보며 용천은 욕설을 퍼부었다.

“흥! 무골충 같은 놈 새끼들!”

대대장은 용천 연대장 앞에 와서 뒷머리를 긁적거리었다.

“원체 저 놈들이 항전 때부터 큰 전장을 쏘다니던 놈들이라…”

“개소릴 작작 쳐! 뒤나 잘 엄호해!”

“옛!”

1대대 패잔병들은 산비탈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산마루를 향해 맹사격을 했다.

따르륵 따르륵

용천 연대장은 산마루 쪽으로 뛰어 나가며 고함쳤다.

“박격포 사격!”

쿵! 쿵!

씩- 씩-

꽝꽝! 꽈르릉 꽝꽝!

맹렬한 박격포사격과 기관총소사에 산마루의 사격하는 총소리가 드물어졌다. 산마루에서 피에 물든 뻘건 빗물이 좔좔 흘러내렸다.

“돌격!”

용천 연대장은 고함치며 자기도 경호원과 함께 산마루로 진격해 올라갔다. 허나 산마루에서는 총소리가 잠잠했다. 칠백 대대장이 영솔해 엄호하던 최동훈 중대는 탄알과 수류탄이 떨어졌던 것이다.
용천이 권총을 산쪽으로 홱 휘두르며 고함쳤다.

“공산군 놈들 탄알이 떨어졌어! 총공격!”

“빨갱이들을 사로잡아라!”

그때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산마루에 시퍼런 총창들이 삐쭉 삐죽 나타났다.

“용사들! 돌격!”

꺽다리 칠백이 제일 먼저 뛰어 내려오면서 괴뢰군 병사 몇을 연신 찔러 넘겼다. 산마루에서 숱한 서슬 푸른 총창들이 덮쳐 내려오면서  괴뢰군과 일당백의 기세로 육박전을 벌렸다.
임호 중대장은 날창으로 벌써 두 놈이나 찔러눕혔다. 날창이 적의 갈비대에 걸려 뽑히지 않자 활 버리고 맨 주먹과 머리로 적들을 치고 박으며 박투했다. 그는 호랑이처럼 날뛰며 날아드는 날창을 비껴 받아안고 휘둘러 괴뢰군 놈을 쓰러뜨리고 무쇠주먹을 안겼다. 어떤 전사들은 총깨묵이 부서지자 공병삽으로 괴뢰군의 목을 쳤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산비탈에서는 “싸(죽여라)!” “싸(죽여라)!” 고함소리와 아우성소리, 비명소리, 신음소리가 처량하게 들리었다. 한국 괴뢰군은 총을 쏠 새 없이 총창과 공병삽에 찔려 쓰러졌다. 간혹 괴뢰군 병사들이 쏜 총에 인민군 전사들이 총창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가슴을 붙안고 쓰러지기도 했다. 괴뢰군은 점차 인민군의 기세에 눌려 산 아래로 밀려 내려왔다.

“제길!”

용천 연대장은 권총으로 코앞에까지 돌격해 내려온 인민군 병사를 쏘아 눕혔다.

“돌격!”

용천 연대장은 쓰러진 인민군 전사의 손에서 총창을 주어들고 제일 앞에서 연신 숱한 국군을 찌르며 짓쳐 내려오는 그 꺽다리 군관을 쏘아보며 덮쳐나갔다.

조선인민군 꺽다리군관 칠백이 용천 연대장 앞에서 뒤로 물러서는 1대대 대대장을 푹 찔러 눕히고 발로 시체를 차며 총창을 빼냈다. 순간,  용천 연대장이 총창으로 꺽다리 옆구리를 푹 찔렀다. 허나 그 꺽다리 군관은 재빨리 옆구리를 탈아 용천의 총창을 피하며 총창으로 용천을 찔렀다. 용천이 총창으로 찔러 들어오는 총창을 탁 쳤다.

쟁강!

총창과 총창이 마주쳐 불찌가 튕기며 무서운 저승사자 쇠소리를 냈다.
"개새끼, 죽어 봐!'
꺽다리가 용천을 찔렀다.
용천이 비껴쳤다. 허나 날창은 허벅다리를 빗찔러나갔다. 용천도 꺽다리를 푹 찔렀다. 꺽다리 날창으로 올리 쳤다. 허나 창끝이 꺽다리 가슴을 빗 찔렀다.

“아차!”

“이거 누구야?!”

갑자기 서로 이를 악문 상대방 낯을 쳐다보는 순간 총창 질을 멈췄다.

“칠백아!”

“용천 히야(형님)!”

그 틈에 용천의 경호원이 권총을 휘둘러 칠백을 쏘았다.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칠백은 가슴에 흉탄을 맞고 총창을 진창에 툭 떨어뜨렸다.

“닥쳐!”

땅! 땅!

뒤따라온 한철주도 총을 쏘았다. 칠백은 가슴을 붙안고 빙그르 몸을 비틀더니 밑 둥이 잘린 썩박나무 넘어가듯 풀썩 쓰러졌다.

한철주가 다시 권총으로 쓰러진 칠백을 겨눌 때다.

“관둬!”

용천은 총창으로 한철주와 경호원의 권총을 탁탁 쳤다. 그는 다급히 물앉으며 칠백을 끌어안았다.

“아우야! 이게 어쩐 일이여?”

한철주와 경호원은 눈이 휘 동그래져 권총을 쥐고 비실비실 뒷걸음질 치다가 총창을 꼬나들고 덮쳐드는 다른 인민군 전사를 쏘았다.

칠백의 가슴에서 선지피가 쿨쿨 솟구쳐 뻘건 빗물과 함께 땅바닥을 뻘겋게 물들이며 흘렀다.

“형, 형님, 쿨룩, 진, 진달래캉 경, 경주는 함흥 촌에 갔소.”

“칠백아!”

칠백은 감겨지는 실눈을 겨우 뜨고 손으로 자기 뒤를 가리키었다.

“성, 성칠캉 재혼했어. 저, 저 뒤에 성칠이…”

“아우야! 칠백아!”

용천은 칠백을 끌어안고 흔들며 대성통곡 쳤다. 허나 칠백은 빗물이 흐르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스르르 감았다. 다시는 형님의 피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아, 아니야. 아우야!”

용천은 칠백을 끌어안고 풍덩 물앉아 얼굴에 얼굴을 미친 듯이 비벼댔다.

한참 후 경호원이 저벅저벅 진창을 밟으며 옆에 다가와 머리를 숙였다.

“연대장! 고지를 점령했어요.”

“뭐라고?! 이 놈, 네 놈이 하나 밖에 없는 내 사촌동생을 죽였어.”

용천은 칠백을 천천히 내려놓고 경호원을 노려보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미쳤어?!”

한철주가 용천의 손목을 꽉 틀어쥐더니 권총을 빼앗아냈다.

용천이 머리를 돌려 한철주 부사단장을 노려보았다.

“이 친일 주구 놈아, 네깐 놈이 내 사촌동생을 죽여?!”

한철주는 우멍한 눈을 부릅뜨더니 싹은 이발을 사려 물었다.

“자네 경호원이 먼저 쐈어! 아직도 빨갱이를 붙안고 있어? 빨리 적군을 추격해야지. 명령을 어기면 군법으로 처단할 테야!”

용천은 주먹으로 한철주의 면상을 한 대 갈겼다.

“친일주구 놈아, 내 네놈 동생을 쏴 죽여도 이럴 끼여?!”

“네 놈이 감히 상관에게 주먹을 휘둘러? 총살해 버리겠어!”

한철주는 이를 악물며 권총을 빼들었다.

땅! 땅!

야무진 총소리와 함께 한철주가 왼팔을 붙안고 풀썩 꿇어앉았다.

소나무숲 속에서 병수가 쏜 총탄이었다.

땅! 땅!

경호원들이 소나무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병수가 인민군 전사의 시체에 총을 쏜 후 교묘하게 둘러댔다.

“이 놈이 한 사단장을 쏘았네.”

경호원들은 인민군 전사의 시체에 대고 총을 몇 방 더 쏘았다.

병수와 경호원들이 소나무 숲 속에서 나오자 한철주는 오만상을 찡그리었다.

“병수 대대장이 아니었더라면 죽을 번했군!”

병수는 용천 연대장한테 곁눈질하더니 한숨을 후 내쉬었다.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 앞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발 밑에서는 괴뢰군과 조선인민군 장병들의 피로 뻘겋게 물든 빗물이 산비탈을 타고 요란하게 흘러 내려갔다. 가을장마 도깨비가 여울 건너는 소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명고지로 철퇴!”

한철주는 을씨년스런 날씨에 더 싸우기 싫었다. 한시급히 시가지에 있는 옥설이네 기생방에 가 비단처럼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기생들의 속살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한선주는 의아해 한철주의 우묵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형님, 왜 철퇴해? 이 기세 몰아쳐 진군하지 않고.” 

한철주는 소나무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으시댔다.

“넌 몰라. 빨갱이들은 유격전에 능해. 쩍 하면 유인술과 매복습격 전 해 뒤통수를 쳐. 이전에 백두산에서 저 놈들의 그 유인술과 매복습견전에 걸려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번했어. 조선인민군 한 개 중대를 전멸시켰으니 승전고를 울리면서 개선할 만도 해.”

그제야 선주 연대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부대를 이끌고 따라 나섰다.

용천은 휘몰아치는 빗발 속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칠백의 시체를 꼭 끌어안은 채 물앉아 엉엉 대성통곡치며 엉덩이를 뗄 염을 하지 않았다.

“저 놈을 끌고 가자!”

한철주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쓸어와 용천의 양팔을 억지로 껴들고 마구 끌어갔다.

“칠백아! 너한테 죽을 죄를 졌구나. 흑흑. 흑흑.”

용천은 끌려가면서도 빗물 속에 쓰러진 칠백이 쪽에 대고 팔을 휘두르면서 흐느끼며 대성통곡쳤다.
"칠백아! 칠백아!"

먹장구름이 가을바람에 동남쪽으로 밀려가더니 빗발이 점점 가늘어졌다. 괴뢰군은 철갑모를 번뜩이며 무명고지로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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